머더봇다이어리: 우주에서 집을 찾기까지.
머더봇다이어리: 시스템통제불능
머더봇다이어리: 인공상태
머더봇다이어리: 로그프로토콜
머더봇다이어리: 탈출전략
Martha Wells(마샤웰스) 지음. 고호관 옮김. 알마 출판.
시스템통제불능이 1권이고 탈출전략이 마지막권이다. 시스템 통제불능의 초판본 발행일이 2019년 9월 26일이고, 마지막권의 초판본 발행일은 2021년 3월 15일이다. 이 책의 한국에서의 모험은 약 1년 6개월 가량이다. 나는 이 모험을 2020년 1월 쯔음 시작했고, 요번달에 마지막권을 사서 읽었으니, 마찬가지로 1년 6개월 정도 모험을 본 것 같다.
1권은 대형 백화점안의 대형 서점에 놀러갔다가, 예쁘게 생겨서 사서 읽었다. 2권은 출간일을 기다렸다가 집근처 서점인 "숲으로된 성벽"서점에 예약을 해서 받아 봤고, 3권은 알마출판사의 서평단에 참여해서, 출판사로부터 선물받아서 읽었다. 마지막권인 4권은 부산의 영광도서에서 2021년 6월 10일에 사서 읽었다. 뭔가 전부 다른 형태로 책을 만나게 된 것 같고, 이렇게 모험을 기다리면서 읽어본 게 너무 오랜만이다. 시리즈물은 잘 읽지 않고, 아니면 이미 완결된 것을 읽어서 그럴지도. 그래서 이렇게 현재진행형 모험을 함께하는 건 참 흔하지 않은 경험이다.
머더봇 다이어리는 Muderbot, 살인봇의 이야기다. 봇은 로봇의 봇인 것같다. 이상한가? 아무래도 프로그램화되어 그 프로그램된 행위를 자동적으로 행하는 기계(혹은 물체, 시스템 등)이 봇의 뜻인 것 같다. 그러니까 미리 설계된 프로그램을 행하는 것을 칭하는 말인 것 같다. 자동화 기계랑은 뭐가 다른 거야라고 물어본다면? 음. 자동화된 기계는 동일한 행위를 반복하는 물체에 쓰이는 단어이고, 아무래도 봇은 외부환경과 변수에 맞춰서 그 행위를 변경하여 행하는 물체에 쓴느 말이 아닐까? 다만, 외부 변수에 따른 행위 변경의 패턴과 행위의 패턴이 미리 결정된(프로그램화된) 원칙을 따르며, 현재까지 봇의 행위패턴과 변경패턴이 인간보다 상당히 제한적인 것이 봇과 인간의 차이...? 아닐까. 내 나름의 추측이라서, 과학적이거나 학술적 엄밀함과는 관련이 없으며,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도 아니다. 그러니까 정보가 아니라 내 생각이다.
그렇다면, 이 주인공은 왜 스스로를 머더봇(-살인하는 기계)라고 칭할까? 머더봇은 보안회사(보안회사이자 경호회사이자 때로는 전쟁도 수행할만큼의 무력을 가진 기업이라고 생각하자.)의 보안봇이다. 보안봇의 역할은 고객의 안전을 유지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고객의 위험을 관리하는 일이다. 외부변수의 위험성을 판단한고(프로그램이 있고, 절차적으로 생각함으로 인간처럼 주관의 함정에 빠지는 일이 적으며, 선입견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경호를 위해 적정정도의 전투를 수행한다. 뭐, 판단력 되게 좋은 경호원정도로 생각하면되지 않을까?
그런 그가 스스로를 살인봇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삭제된 기억 속에 그가 인간을 비롯하여 봇들을 살해하는 모습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메모리의 기억은 삭제되었지만, 유기물에있는 그 살인의 모습이 그에게 남아있어서 그는 스스로를 살인봇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사라진 기억을 찾고 싶어한다. 수오지심이라고 해야할까? 조르바가 터키군을 죽이고, 그의 자식들을 보고 평생 도망다니게 했다는 그런 마음...아닐까? 인간적이지 않은 가장 인간적인 가치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머더봇은 인간에게 잘 없는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머더봇이 굉장히 친숙한데, 시스템해킹을 하고, 자기 의사결정권을 찾아서 하는 행위가 엔터테인머트 다운 받아서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로 치면, 넷플릭스를 보는 걸 즐긴다. 뭐랄까. 그 시대 드라마, 영화, SF같은 걸 조용히 방해받지 않고 보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옷을 사는 것도 나름 좋아할지도 모른다. 우리 머더봇은 우주선 히치하이킹을 하는데, 그 뇌물이 드라마란 점에서 나는 웃었다. 막강의 SF, 우주 대기업체 세계에의 대중오락물에도 여전히 누군가를 몰입시키는 서사와 극이 있다는 점에서 낙관적이다. 심지어 종래의 인류와 다른 자유의지의 존재를 몰입시키는 서사와 엔터테인먼트가 있다는게 참 희망적이다.
머더봇은 인간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 인간은 허술하고, 감정적이고, 선입견으로 판단하고. 그러나 머더봇은 자유의지가 있는 존재임에 틀림없다. 인간과 다르고...... 거창하게 로봇혁명, 인류사회 전복을 꿈꾸는 투사가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피드를 보고 자유롭게 다니면서 티나지 않게 다니고자 하는 그의 모습은 소시민적인 너드와 비슷하다. 물론 그런 그의 모습은 기계로서 인식되는 사회상이나 까딱하면 끌려가서 해체되고, 암묵적인 박해와 물건이상의 지위를 가지지 못하는 이래저래 박해는 커녕 박해의 취급에도 들어오지 않는 물건이기때문에 생기는 특징이겠지만.
그 거대한 세계를 바꾸려고 하기보다, 스스로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게끔 세계 속에서 연기하고, 해킹하고, 우주선 GTA도 하는 그런 그의 소심하면서 소시민적이면서 제멋대로인 모습이 좋다. 그래, 그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을지언정, 영웅과 투사와 거대담론과 상반되는 섬세하면서 제멋대로인 그를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닐지언정, 무언가를 미워하지 않고, "나는 이 옷이 마음에 들었다"라고 좋아하는 것을 찾는 그런 그의 모습이 작위적이않고, 하나의 씨앗같다고 느낀다. 그저 싹을 틔우고 자라나는 모습. 그렇게 의연한 모습이 압도하지 않고 다가온다.
오딧세이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는 이야기라고 한다. 신의 미움을 산 오딧세우스가 집에 돌아오기까지의 곡절인데. 머더봇다이어리는 집을 찾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머더봇이 집을 찾기까지의 이야기가 이 머더봇다이어리라고 생각한다. 집을 찾음으로써 그는 진정한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그가 그 모습 그대로 있을 수 있는 장소와 관계를 찾는 이야기. 그런 의미에서 머더봇의 성장담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우주에서 집을 찾는 과정은 쉽지않다. 대기업체의 음모를 휩쓸리면서, 전투봇과 전투하고, 몸의 유기체와 정신은 80% 넘게 날아가보고. 우주선 GTA하고, 봇들을 꼬시고, 뇌물도 쓰고. 신체도 변형하고. 동료도 구하고, 그가 동료인지도 알아야한다.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리고 심적으로도 편한 일상이 아니라, 모험담이지만 그 모험을 통해 우리 머더봇은 진짜 친구를 가지고 시민이 되는게 아닐까. 스스로도 그렇게 성장하지 않을까. 원래 사회에서 자리잡기는 쉽지 않다. 그건 나도 그러니까.
언제부터인지, 최근에 SF소설이 참 눈에 띈다.
우리가 세계의 비극을 마주하기엔 상상력이나 리얼리티가 부족하고. 우리의 정신이 세계를 마주하기에 연약해서일지도. 아니면 이미 아름다운 세계라 비극이 존재하지 않거나, 너무나 지리하고 지엽적인 비극만이 남아서 일지도 모른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 아니면 변하는 세계에서 기존의 문법으로 세계를 표현할 수 없어서인지 모른다.
SF 소설을 자주 읽지는 않았다. 그러나 SF세계에 존재하는 비극이 지금 이 시대에 없는 비극은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현재의 해결되지 않는 모순이 새로운 기술, 새로운 존재, 새로운 배경을 만나면서 심화되거 극대화되서 나타나는 거겠지? 그런 의미에서 SF의 비극과 모순은 현시대의 파헤치지 못하고, 규명하지 못한, 해결하지 못한, 아직 미완된 문제겠지.
머더봇 다이어리의 배경과 사회상은 흥미롭다. SF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새롭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 그랬으니까. SF지만 이 소설에서 그렇게 어려운 과학적 원리라든가는 나오지 않는다. 하드 SF계열은 아니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굉장히 배경과 인물과 특징이 흥미로우니까. 해리포터의 호그와트처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이번에 읽었을 때 나는 머더봇다이어리에서 "집찾기-자리잡기"를 문제로 읽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문제와 의식을 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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